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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다 노부나가 공문서

분야 역사
컬렉션명  
시대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
세기 16세기
작가(일본어) 織田信長(執筆: 楠長諳)
작가(한국어) 오다 노부나가(집필: 구스노키 조안)
연월일 덴쇼 4년 4월13일
년(서기) 1576년
수량 1통
재질 종이에 먹(형상: 접은 종이)
사이즈 28.3×41.6
지정  

해설

오다 노부나가의 ‘天下布武(천하포무)’ 도장이 찍힌 공문서로 노부나가가 탄고 토착 무사로 추정되는 야노 야사부로 앞으로 보낸 것이다. 단바의 ‘아카이 고로’와 ‘오기노 아쿠에몬노조’를 사면하기로 했으며, 야노 야사부로의 영지는 현 상태 그대로 보증할 것이니, 아케치 미쓰히데와 잘 상담하여 더욱 충성을 다하라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.

아카이 가문은 히카미군의 고야성(단바시 히카미초)을 본거지로 한 토착무사로 16세기 전반 이후 그 지역에서 아마타군과 이카루가군 부근까지 세력을 넓혀 나갔다. ‘오기노 아쿠에몬노조’는 실명이 ‘나오마사’이다. 나오마사는 아카이 가문에서 오기노 가문으로 들어가 양자가 되었지만, 16세기 중반 무렵에 구로이성(단바시 가스가초)의 오기노 아키키요를 살해한 후 스스로 성주가 되었다고 한다.

‘아카이 고로’는 나오마사의 조카 다다이에를 말한다. 이 당시 나오마사가 후견인으로서 아카이 가문과 오기노 가문의 세력권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.

이 문서는 기록된 연도가 적혀 있지 않기 때문에 언제 작성되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검토가 필요하다. 우선 글 속에서 아케치 미쓰히데를 ‘고레토’라 부르고 있는데, 미쓰히데에게 ‘고레토’라는 성이 부여된 시기는 덴쇼 3년(1575년) 7월이다. 미쓰히데는 그 해 가을부터 노부나가의 명을 받아 단바 공격을 시작했다. 또한 나오마사는 덴쇼 6년(1578년) 3월에 사망했다. 따라서 이 문서는 일단 덴쇼 4년(1576년) 또는 덴쇼 5년(1577년)의 4월 13일자 문서로 추정할 수 있다.

게다가 이 문서 안에 등장하는 ‘작년부터 오다 쪽을 편들고 있는 사람들’이라는 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. 여기 나오는 ‘작년’이라는 것은 미쓰히데가 단바 공격을 시작한 덴쇼 3년(1575년)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.

또한 원래 이 문서와 하나의 세트가 되어 야노 가문에서 전해져 온 것으로 보여지는 문서, 즉 미쓰히데가 야노 야사부로 앞으로 보낸 첨부장도 남아 있다(“신수 가메오카시 역사” 자료편2, 영주편 108호 문서). 이 첨부장에도 연도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, 공문서의 다음날에 해당하는 4월 14일자로 ‘노부나가로부터 공문서가 나왔으므로 보낸다’라는 용건과 함께 ‘어디로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출진 명령을 받았다’라는 미쓰히데의 근황을 전하고 있다.

이 4월 14일이라는 날짜에 주목하여 노부나가의 전기인 “信長公記(신초코키)'를 보면, 덴쇼 4년(1576년) 4월 14일에 노부나가가 미쓰히데 등에게 오사카 이시야마 혼간지 절 공격을 명했다는 기술이 눈길을 끈다. 미쓰히데의 첨부장에 있는 ‘출진 명령을 받았다’라는 것은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.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문서는 덴쇼 4년(1576년)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.

아카이ㆍ오기노 가문은 미쓰히데의 단바 공격에 맞서 끝까지 저항했던 일족으로 알려져 있다. 나오마사의 사후 덴쇼 7년(1579년) 8월, 구로이성은 미쓰히데의 공격을 받아 함락되었다.

아울러 이 문서를 집필한 공문서 기록관은 그 필적을 통해 구스노키 조안으로 추정된다.

또한 이 문서에 대해서는 역사 스테이션 세미나 “고문서 읽기: 오다 노부나가 공문서”도 참조하길 바란다.

<석문>
赤井五郎・荻野/悪右衛門尉、種々令侘/言候状、赦免候、然而/去年以来此方令/一味之輩身上事、/猶以無異儀申付之/上者、当知行等聊不/可有相違候、惟任相/談弥忠節専一候也、/四月十三日(織田信長朱印)/矢野弥三郎殿

<일본어 독음문>
赤井五郎(あかいごろう)・荻野/悪右衛門尉(おぎのあくえもんのじょう)、種々(しゅしゅ)佗事(わびごと)/せしめ候条(そうろうじょう)、赦免(しゃめん)し候(そうろう)、しかして、/去年(きょねん)以来(いらい)此方(こなた)/一味(いちみ)せしむるの輩(ともがら)の身上(しんじょう)の事(こと)、/なおもって異儀(いぎ)なく申(もう)し付(つ)くるの/上は、当知行等(とうちぎょうとう)、いささかも/相違(そうい)あるべからず候(そうろう)、惟任(これとう)相/談(そうだん)、いよいよ忠節(ちゅうせつ)専一(せんいつ)に候也(そうろうなり)、/四月十三日(しがつじゅうさんにち)(織田信長朱印(おだのぶながしゅいん))/矢野弥三郎殿(やのやさぶろうどの)
Akai Goro Ogino/Akuemonnojo shushu wabigoto/seshime sorojyo shamenshi soro, shikashite,/kyonenirai konata/ichimi seshimuru no tomogarano shinjonokoto,/ naommotte iginaku moshitsukuruno/uewa, touchigyoto, isasakamo/soiarubekarazusoro, Koreto so/dan, iyoiyochusetsu senitsuni soronari,/shigatsu jyusannichi (Oda Nobunaga shuin)/Yano Yasaburo dono

<현대어역>
아카이 고로와 오기노 아쿠에몬노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탄원이 들어오고 있으므로 사면하도록 합니다. 단, 작년부터 오다 쪽을 편드는 사람들의 영지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변경이 없도록 할 것이므로, 현재의 영지는 현 상태 그대로 보증합니다. 아케치 미쓰히데와 잘 상담하여 더욱 충성을 다하도록 해 주십시오.
4월 13일(도장 ‘天下布武(천하포무)’
야노 야사부로 귀하

※ ‘/’는 줄바꾸기 위치를 표시함.